푸른길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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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조상현
SUBJECT   손암 정약전

인간은 누구든 자의나 타의에 의해 갇혀 사는 존재이다. 남을 강제로 가두거나 자신을 스스로라도 가두고 살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라는 의미이다. 어쩌면 천성적으로 가두어놓고 살기 좋아하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한다.

권력과 부 , 종교(신), 가족, 정치, 가문, 직업, 예술, 이데올로기 속에 스스로를 가둬놓고 살아온 것이 인간의 역사가 아닌가 싶다.

이에 자유에의 갈망은 인류문명이래 인간이 추구해온 가장 핵심적인 화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숙제요, 운명이다.

가두어 놓기가 심할수록 이를 탈출해서 자유를 찾아가는 의지와 욕구도 강한 것이 인간이다. 다산 정약용과 손암 정약전 형제는 시대의 증오와 가둬놓기에 맞서 스스로를 한 시공 속에 잠가두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롭게 영원을 살아간 인물이다.

타의에 의해 강진과 흑산도에 각각 갇혀 살았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몸뚱이가 갇힌 대신에 영혼만은 자유자재로 풀어놓고 살았다.

정약용, 정약전 형제가 역사속에서 ‘영원을 살고 있음’을 밝힌 책이 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과 한승원의 ‘흑산도 하늘길’이다.

특히 손암은 흑산도 섬에 갇혀 살다가, 그 섬 밖으로 한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비극적으로 비참하게 죽었다. 통곡하지 않고는 따라 밟아갈 수 없는 그 길을 따라간 소설이 ‘흑산도 하늘 길’ 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 구속으로부터의 자유

손암은 소흑산도(이하 우이도)에서 9년, 대흑산도에서 7년을 갇혀 살았다. 흑산도는 서남해 전남 신안군의 진한 쪽빛 바다 한가운데에 떠있는 섬이다. 목포에서 현대 여객선으로도 3~4시간 달려야 도달하는 섬이다.

손암은 유배지를 향해 전라도로 열이틀 동안이나 걸어 온데다 이제 너비를 해량할 수 없도록 아득한 암청색의 바다 저쪽으로 또다시 험난한 바닷길을 가야 하는 처지이다. 손암은 파도포말로 하얗게 뒤집힌 바다가 무서웠다. 진저리를 치면서 몸을 움츠렸다.

으르렁거리는 파도소리와 알 수 없는 검은 섬인 아득한 흑산도에 대한 두려움과 겨울바다의 추위로 말미암아 몸을 떨고 있는 것이다. 손암은 “아아 이것은 지옥행이다.”고 외친다.

손암 정약전의 16년 유배생활

손암의 절망적인 심정에 이르면 처연해진다.

“지긋지긋하여 눈을 감아 버렸다. 악몽 같은 생각들이 밀려들었다. 그들은 왜 나를 하필 머나먼 고도인 흑산도로 유배 보내는가? 이 배에 오르면서 내 삶은 나락의 끝장, 물지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추위와 멀미로 질려버린 손암의 유배지 뱃길은 공포와 절망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가도 가도 끝없이 멀고 먼 이 험한 바닷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며 인간의 가장 약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지만 손암은 험한 뱃길에서도 사형당한 이승훈, 이벽, 정약종과의 추억을 되새기며 삶에의 의지를 북돋운다.

“아, 나는 바야흐로 하늘길에 들어서고 있다. 나의 유배길은, 더욱 확실한 그 길로 하늘길로 들어섰다.... ” “내가 지금 험난한 바닷길에서 만난 것이 그 절대고독이다. 이 고통의 순간을 악물고 참아야 한다. 바야흐로 나는 불지옥을 건너고 있다.”

우이도에 자리 잡게 된 손암은 다행히 유배생활에 필수적인 의식주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교육열이 높은 흑산도 백성주민들이 손암을 서당 훈장으로 모시고는 의식주를 공급한 것이다.

손암은 미역국 한 그릇만으로 끼니를 때운 적이 많았던 신지도 유배지 생활에 비해 이런 우이도 생활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는다.

“우이도에서는 유배된 죄인 주제에 세끼 밥을 배부르게 먹고 숭늉으로 입안을 헹구고 트림을 하면서 살 수 있었다. 나이 많은 학생들은 서로 앞 다투어 아침저녁으로 방이 식지 않도록 아궁이에 군불을 뜨끈뜨끈하게 지피곤 했다. ”

불안과 공포 속에서 영혼의 자유를 찾아

손암은 우이도에서의 일상적인 유배생활을 이어가면서 점차 심리적인 안정을 찾는다. 서당에서의 글 가르치기, 동네 이장 및 몇몇 유지들과의 교분, 유배지 죄인을 감시감독하는 아전관리와의 불편한 관계, 학문에 열중했던 지난날에 대한 회상과 추억, 가끔씩 산책 나가서 하염없이 먼 바다를 바라보는 일 등이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론 불안한 마음이 엄습한다. 정약용 형제를 총애하며 극진히 아꼈던 정조는 이미 없고 남인세력을 적멸하고자 하는 노론만이 득세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문득문득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잠을 자다가도 놀라 깨고, 밥을 먹다가도 숟가락을 놓고 아득하게 흩어지는 넋을 다잡지 못해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두려워지고, 불안해지고, 식은땀이 흐르면 먹는 것이 체하곤 했다.... 바닷가 산책을 하다가 연안으로 낯선 배가 들어오면 눈앞이 아득해지곤 했다. 벽파의 누구인가가 상소를 하여 나에게 사약을 보낸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과 공포가 앞서는 것이었다.”

불안과 두려움은 인간의 심리를 흔들어 놓는 독약이다. 그래서 그 파장은 늘 고요하게 가라앉은 손암의 정신을 흔들어 놓곤 했다.

술 !! 인간의 안식처인가 파괴자인가?

인간이 불안과 공포 심리를 잊기 위해 발명해낸 것이 술이다. 손암 역시 그 불안과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술을 찾았다. 손암은 남달리 술을 즐겼다. 술을 전혀 못하는 동생 약용과는 달리 공부할 때나 벼슬을 할 때나 유학선비로서 성인들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삼가고 착하게 애를 쓰면서도 문득 답답하게 굳어지는 삶을 술로 풀곤 했던 것이다.

유배지에서의 고독과 불안으로 손암은 끊임없이 술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계단 아래로 곤두박질칠 정도로 술을 마시곤 하는 것이 육신과 영혼을 황폐하게 한다. 그렇지만 가끔씩 그렇게 해서 막힌 것을 뚫어야 한다. 헤아릴 수 없도록 깊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쳐 엉엉 울어버리고 싶은 경우가 많았다. 울다가 악몽 같은 삶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깨어나서 전혀 다른 새 삶을 꾸려가고 싶었다.”

손암의 절대고독과 몸부림을 느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심리적인 안정의 한 방편으로 주역점을 치곤했다. 손암은 다른 유학자들과 달리 음양오행론에 근거한 주역에 심취하여 과거시험에서 이를 소재로 급제를 하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손암은 주역의 이치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유배지 생활을 버텨나가게 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손암이 고아인 ‘거무’라는 섬처자와 함께 살림을 하면서 유배지의 생활은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한다. 손암은 유배지에서 ‘거무’를 첩으로 들여놓아 두 명의 자식형제를 낳는다.

그럼에도 유배지에서의 손암은 절해고도에 갇힌 죄수처럼 무수히 많은 밤을 적막하게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깜깜한 밤에 홀로 누운 손암은 생각에 잠기고 또 잠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짐승의 슬픈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유배살이를 왔다가 육지로 나가지 못하고 죽어간 원혼일까?” 이럴 때마다 손암은 정수리에서 전율이 일어나 등줄기를 타고 내린다.

운명에의 순응은 행복인가? 불행인가 ?

그래서 손암은 섬처자 ‘거무’와의 인연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거무와의 살 섞임을 행운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거무가 빚어내는 술은 손암의 유배지 생활에서 큰 위안이 된다. 그리고는 운명과 자연(바다)의 엮임 속에 자유로운 영혼을 만끽하면서, 마침내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어류서적인 ‘자산어보’를 집필하게 된다.

손암은 7년여의 우이도 생활 속에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맞는다. 고향 경기도 마재에 있던 외아들 학초가 요절하는 것이다. 이에 손암은 세상을 거부하고픈 심정 속에 더욱 깊숙이 있는 대흑산도로 유배지를 옮긴다.

이후 손암은 흑산도에서 7년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의 일상생활 역시 우이도에서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자식을 잃은 손암은 초탈과 초월의 자포자기 심정에 빠져든다.

“흑산도에 오면서 전혀 다르게 변해 있었다. 우이도에서는 죄인으로 유배온 처지이면서도 벼슬살이한 양반임을 앞세워 그곳 사람들에게 하대를 하고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활개를 크게 저으며 걷더니 대흑산으로 온 뒤부터는 모든 사람에게 경어를 쓰고 고개를 숙인채 어깨를 늘어뜨리고 걸었다. 우이도에서는 사립 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도 반드시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에 망건과 탕건과 갓을 쓰더니 흑산도에 와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외관을 정제하지 않았다.”

약전은 민중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 했다.

씨줄과 날줄로 얽힌 절망과 희망, 어디가 끝인가!

한편 흑산도에 갇혀 사는 손암은 네 가지의 재미로 살았다. 거무가 빚은 술마시는 재미, 술취한 채 거무의 부드러운 맨살을 끌어안고 젖가슴 속에 얼굴을 묻는 것, 거무한테서 낳은 두 자식 ‘무’와 ‘공’을 보는 것, 마지막으로 고기들의 족보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때의 손암은 행복했다.

“거듭 잔을 비웠다. 얼큰해지니 거무가 더욱 예쁘고 아름답고 귀여워졌고 그리하여 행복에 겨워 또 잔을 비웠다.” 그리고는 초탈해졌다.

“나는 한양땅 지옥을 잘 피해왔다. 그냥 신선처럼 이렇게 살다가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그래, 다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다.’하고 중얼거리며 “거무를 끌어안고 잤다 그녀의 살결은 부드럽고 향기로웠다.”

그러다가도 손암은 고통스러워했다. 자포자기와 초탈, 운명에의 순종에 빠져있을 때는 행복하다고 느꼈으나 불현듯 가문, 정치적 탄압, 가족, 자신의 비극적인 처지를 생각하면 불행했다. 손암은 유배지 생활 내내 행복과 불행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밖으로 나가서 휘휘 돌아다니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엉엉 소리쳐 울고 싶었다. 이때 그의 몸과 마음은 술을 찾았다. 술을 양껏 마시고 몽롱해지고 싶었다. 몽롱해지면 의식이 까물까물해질 때까지 미친 듯이 마시고 싶어졌다.”

손암의 대흑산도에서의 음주는 더욱 심해졌는데 이는 손암의 건강을 결정적으로 해치고 만다. 이에 강진의 동생 약용은 형 약전의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걱정하여 산에 있는 산개를 잡아 장기복용할 것을 권하면서 상세한 요리법을 작성하여 보내주기까지 한다.

갇힌 삶속에서 영혼의 자유를 찾을 수 있는가?

그런점에서 약용과 약전 형제의 유배지 생활 속에서의 우애는 남다른 감동을 자아낸다. 14년의 유배생활 즈음, 동생 약용이 먼저 해배될 순간이 왔다. 손암은 동생 약용이 해배되면 반드시 자신을 찾아 올 것이라 여겨 “내 아우가 험한 바다길을 건너서 나를 보러오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 내가 우이도에 가서 기다리겠다.“ 며 야밤에 도주하다시피 배를 타고 우이도로 향했다.

이에 흑산도 주민이 쫒아와 손암이 탄 배를 빼앗아 돌아갔다. 이미 그는 흑산도 백성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손암은 한해가 넘도록 흑산도에 묶여 있다가 우이도로 옮겨갔으나, 아우 다산의 해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손암 정약전은 유배 16년만에 아우를 만나지 못한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816년 6월 6일이었다.

손암 정약전의 유배지에서의 삶은 타인에 의해 처절하게 갇힌 삶이다. 시대상황에 의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갇혀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손암 스스로가 자신을 가둬놓은 삶이었다.

갇힌 삶속에서도 손암은 끝없이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였다. 그리고는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자유자재로 풀어놓았다.

그것이 술에 의해서든, 여자에게서든, 자연 생태로 향했든, 흑산도 백성에게였든.
그리고는 참담한 갇힘에 대해 울분을 토하기도 하고 그 울분을 삼키기도 하였다.

오늘에 살아 움직이는 역사인물 느껴보기 :감동과 감흥

손암 정약전은 유배지 생활 16년동안 내내 자신의 영혼에 대해 풀어놓기와 가둬놓기를 거듭하였다. 그 섬에 그렇게 갇혀 살다가 인생을 마감했다.

‘흑산도 하늘길’의 저자 역시 서울을 버리고 장흥 바닷가 마을에 토굴을 짓고 자신을 가둬놓고 10여년을 보낸 소설가이다. 작가가 역사 속에서 가두어진 삶을 살면서 영혼을 자유롭게 산 인물을 찾아낸 것이 바로 정약전 정약용 형제이다.

시대상황을 떠나서 절대고독은 역사 속에서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역사서인 이덕일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과 역사소설인 한승원의 ‘흑산도 하늘길’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에게 역사가 오늘에도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느껴지게 하는 책들이다.




政山 이달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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