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길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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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조상현
SUBJECT   우이도 홍어장수 문순득

홍어장수 문순득,

그는 섬 모양이 소의 뒤 귀 모양과 비슷하다고 붙여진 전라남도 신안군의 우이도(牛耳島)에서 살던 상인입니다. 조선시대 당시에도 흑산도 홍어는 요즘처럼 최고의 맛으로 인정받았기에 문순득은 시큼한 냄새가 폴폴나는 홍어를 짊어지고 홍어장사를 다녔습니다.

당시 우이도는 일명 소흑산도라고도 불렸는데, 여기서 배를 타고 기착지인 나주 영산포에 홍어를 실어 나르며 돈을 만지던 문순득은 1801년 12월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바다에서 그만 표류를 당하고야 말았습니다.

이후 돛대가 부러진 채로 바다에 표류하던 배는 이윽고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을 연출했던 유구국(琉球國-오키나와)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유구국은 조선에 정기적으로 사신을 보내던 곳이라서 그곳의 사신은 조선에서 3품의 항렬을 내려 줄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한 곳이라 표류인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줬습니다. 현종대 바다에 표류해 유구국으로 떠내려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그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삭발하거나 장발 차림이었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아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그들이 북 하나를 가지고 앞에 와서 손으로 가리키며 고무(鼓舞)하는 모양을 지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뜻을 알아채고 노래를 부르며 북춤을 추자, 그때에서야 그 사람들이 고려인(高麗人)이라고 부르면서 집을 지어 거처하게 하는가 하면 쌀을 주어 밥을 지어먹게 하는 등 자주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 <현종실록 5권, 3년 7월 28일>

이처럼 조선에서 표류한 사람들을 고려인이라고 부르며 그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유구국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문순득의 일행들 또한 유구국에서 일정한 휴식을 취하고 배를 구해 다시 그리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려 했습니다.

그해 10월 초에 드디어 여송국에서 청나라로 떠나는 사신인 연경 진공사(燕京進貢使)일행과 함께 배를 띄웠습니다. 그러나 항해를 시작한 지 십여 일 후 하늘이 또다시 이들에게 시련을 주는 듯 고향을 향해 힘차게 항해하던 문순득 일행의 배는 풍랑을 만나 기약 없는 표류를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이 바로 여송국이었습니다. 정말 지지리도 복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겠지만, 문순득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여송국에서 몇 개월을 지내면서 그곳의 생활모습과 언어를 빠르게 습득한 문순득 일행은 소주(蘇州)상인들의 쌀 무역을 돕는 등 다양한 경제활동을 통해 일정한 여비를 만들었고, 드디어 청나라를 거쳐 그리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와 함께 표류했다가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문호겸(文好謙)ㆍ박양신(朴亮信)ㆍ이백근(李百根)ㆍ이중태(李重泰)ㆍ김옥문(金玉文) 등 총 6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거쳐간 나라를 살펴보면 상상을 초월하는데, 유구국(琉球國)ㆍ중산국(中山國)ㆍ영파부(寧波府)ㆍ여송국(呂宋國)ㆍ안남국(安南國)ㆍ일록국(日鹿國) 등 동남아시아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조선으로 온 것입니다. 당시의 교통편을 생각해 볼 때 정말 엄청난 여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운 조선으로 돌아온 문순득의 이야기는 정약전을 통해서 통해 글로 남게 되었고, 동생인 정약용과의 편지왕래를 통해 정약용 또한 문순득의 이야기를 잘 알게 됩니다. 정약용은 문순득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토지제도의 개혁과 민생안정을 위해 쓴 책인 <경세유표>에 동전의 크기를 변화시켜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금과 은의 양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펼치게 됩니다.

이해응, 표류인들을 위해 시를 남기다

조선 순조 때의 문신인 이해응이 동지사 일행으로 중국에 갔을 때의 견문을 기록한 책인 <계산기정>을 살펴보면, 우연히 연경의 객사에서 문순득 일행을 만나 그들과 나눈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는 조선 표류인들의 놀라운 이야기를 들으며 그 수많은 내용을 글로 모두 남기지 못한 것을 못내 서운해 했습니다. 그리고는 모두에게 술 한 잔을 듬뿍 부어 주며 그들을 위해 시를 적었습니다.

흑산도 민속은 매우 어리석어 / 黑山民俗太蠢蠢
바다에서 이익을 쫓느라니 대부분 곤궁하구려 / 濱海逐利多困窘

석우풍(石尤風)이 어찌 다니는 사람 사랑할 리 있나 / 石尤何曾愛行人
만경의 사나운 물결 한없이 이네 / 萬頃惡浪吹不盡

일엽편주 아득히 가는 대로 놓아두니 / 一葦茫然縱所之
떠가는 배 문득 허루신과 같구나 / 泛泛忽如噓樓蜃

길은 강절의 하늘 아득한 데로 통하였고 / 道通江浙天浩渺
돛대는 오초의 산 높은 데에 떨어졌네 / 帆落吳楚山嶾嶙

일록국 사람 가죽으로 옷해 입고 / 日鹿國人皮爲衣
가을바람에 새 쫓는 매처럼 용맹스럽네 / 猛如逐雀秋風隼

해동의 여아는 공연히 한이 맺혀 / 海東女兒空結恨
누굴 위해 다시 공후인을 짓는고 / 爲誰更作箜篌引

네 만약 문장의 안목 갖추었다면 / 使汝若具文章眼
닿은 곳마다 시로써 번민 잊을 수 있었을걸 / 觸境有詩能排憫

원하노니 네 고향엘 가거들랑 / 願汝鄕山歸去日
농가에 안식해서 농사나 힘쓰게나 / 安息田家服畦畛

그는 험한 바다를 통해 먹고 사는 뱃사람들에게 이제는 농사를 지으며 육지에서 안전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시를 통해 읊었습니다.

홍어장수 문순득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사람

이처럼 모진 시련을 거쳐 조선에 돌아온 문순득은 이후에도 계속 흑산도 홍어장사로 이름을 날렸고, 현재 우이도에는 그의 자손들이 선조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록 표류를 두 번이나 당해 망망한 바다에 맡겼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문순득의 이야기는 또 다른 희망 만들기일 것입니다.

절망의 시대라 울부짖으며 한탄할 것이 아니라, 내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최선의 길을 찾아 가는 문순득과 같은 삶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젠 그를 표류인 문순득이 아니라 삶의 개척자 문순득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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