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길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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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조상현
SUBJECT   그대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 법정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그대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정채봉을 그리며



정채봉님은 아주 죽은 게 아니라 우리 곁을 떠나갔을 뿐이다.
한때 머물던 육체를 떠나 자신의 틀에 알맞은 새로운 몸을 갖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간 것이다. 이 몸속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이 몸을 지닌 것이므로, 이 몸이 제 할 일을 다 했을 때 낡은 옷을 벗어버리듯 한쪽으로 벗어 놓는다.
그는 때가 되면 어디선가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천지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나면 평소 그의 모습과 무게가 새롭게 떠오른다. 정채봉님이 우리 곁을 훌쩍 떠나간 지 한 달이 가까워진 이제 그의 모습과 무게를 되새기며 슬퍼한다.사람이 가고 나면 그에 대한 기억만 아프게 남는다. 지난 연말 마지막으로 그를 방문했을 때 환자는 기분이 좋아 일어나 앉아서 전에 없이 우스갯소리를 하며 말을 많이 했다. 그날은 다른 방문객이 없어 식구들뿐이었다.

불쑥 들어선 나를 보고 더 못 뵐 줄 알았더니 다시 뵙게 됐다면서 아주 반가워했다. 그전에 갔을 때는 한 팔로 얼굴을 가리고 훌쩍훌쩍 울고 있어 내 마음도 울적했었다. 그날 병실을 나오면서 나는 그를 안아주었다.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이것이 이 생에서 우리 사이에 마지막 하직인사가 된 셈이다. 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뼈만 앙상한 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몇 차례 길가에 차를 세워야 했다.살아서 다시 만날 날이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정채봉님을 처음 만난 것은 샘터에서였다. 어느 날 신입사원으로 그가 원고를 가지러 강 건너 다래헌에 왔었다. 그 시절에는 편집기자가 직접 원고를 받으러 왔었다. 그 무렵 다래헌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나는 지난 겨울 우이동에 있는 그의 집 거실 사진틀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두 사람이 다 펄펄하던 시절이었다.

불일암에서 지낼 때, 내 '산방한담' 칼럼에 오자가 무려 대여섯 군데나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실린 글에 오자가 나오면 몹시 불쾌하다.
독자에 대한 결례일 뿐 아니라 편집자의 성실성에 신뢰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랫절에 내려가 전화로 원고를 더 보내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편집 책임자인 그가 예고도 없이 불일암에 왔었다.
내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밤차를 타고 사과하러 내려온 것이다.
훈육주임 앞에 선 학생처럼 풀이 죽어 있는 그의 모습을 대하자 내 마음도 이내 누그러졌다. 함께 부엌에 들어가 아침을 지어 먹었다.

어느 해 이른 봄, 그는 소포와 함께 다음과 같은 사연을 보내왔었다.
'스님, 생신을 축하 올립니다. 오늘이 있어 저의 생도 의미를 지닐 수 있었기에 참으로 저에게도 뜻있는 날입니다. 저를 길러주신 할머니께서는 늘 절 구경을 다니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런데 몰래 한 푼 두 푼 모으신 돈이 여비가 될 만하면 이때를 놓치지 않고 제가 털어가곤 하였습니다. 그때의 제 속임수란 "할머니, 제가 이 다음에 돈 벌어 절에 모시고 갈게요" 였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제 손으로 월급을 받아오기 훨씬 전에 저쪽 별로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제가 첫 월급을 타던 날 누군가 곁에서, 어머님 내복을 사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내의를 사드릴 어머님도, 할머님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울음으로도 풀 수 없는 외로움이었습니다. 스님의 생신에 (제가 잘못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살까 생각하다가 내의를 사게 된 것은 언젠가 그 울음으로도 풀 수 없는 외로움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을 짚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스님께서는 제 혼의 양식을 대주신 분이기도 하니까요. 다시 한번 축하 올립니다. 스님! - 정채봉 올림'

봄볕이 들어온 앞마루에 앉아 이 사연을 두 번 읽었다. 함께 부처온 봄 내의를 매만지면서 대숲머리로 울긋불긋 넘어다 보이는 앞산의 진달래에 묵묵히 눈길을 보냈다. 입산 출가 이래 나는 한 번도 내 생일을 기억한 적도, 생일 축하를 받아본 적도 없다. 그것은 출가 수행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주민등록증에 기재된 생년월일은 실제 출생일과 같지 않다.

재작년 가을에 보내온 엽서에는 순천에 가서 할머니와 어머니의묘를 이장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묘지가 산업도로로 편입되는 바람에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연을 적고 있었다.
'기억에 없는 어머니와의 첫 만남이 유골로 이루어지게 되어 눈물을 좀 흘렸습니다. 저의 나이든 모습이 스무 살의 어머니로서 가슴 아파하실까 봐 머리에 검정물을 들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이 사연을 읽고 내 눈시울에도 물기가 배었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묻힌 고향 땅 양지바른 그곳에 지금 그도 누워 있다.
그가 홀로 되어 몹시 외롭고 안쓰럽게 여겨지던 시절, 책을 읽다가 눈에 띄는 구절이 있어 함께 음미하고 싶어 써 보낸 글이 있다.

'혼자서 자란 아이들은 혼자 살 수밖에 없도록 길들여져 있다.
그는 혼자 있는 것이 좋았고 그렇게 훈련되어 왔다.
혼자서 자란 아이들은 결국 누구나 혼자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래서 혼자가 되는 이런 순간에 맞닥뜨릴 것에 대비하여 미리 연습하면서 살아간다...'

한평생 외롭게 살아온 그가 그의 문학과 정서를 길러준 고향의 흙과 바람, 할머니와 어머니 곁에서 쉬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고 싶다.
이 다음 생에는 부디 덜 외로운 집안에 태어나 튼튼한 몸으로 이생에 못 다한 일을 두루 이루기를 바라면서 명복을 빈다.



올 때는 흰 구름 더불어 왔고
갈 때는 함박눈 따라서 갔네
오고가는 그 나그네여
그대는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_법정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_





정채봉 [丁埰琫, 1946.11.3~2001.1.9]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1946년 11월 3일 전라남도 순천(順天)에서 태어나, 1975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73년 《동아일보》에 동화 《꽃다발》이 당선되면서 등단한 이후, 월간 《샘터》 편집부 기자·기획실장·편집부장·출판부장·주간·편집이사, 초등학교 교과서 집필위원,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위원, 계간 《문학아카데미》 편집위원,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한국의 성인동화 장르를 개척한 작가로, 1983년 동화 《물에서 나온 새》를 발표한 이래, 11권의 동화와 7권의 생각하는 동화, 11권의 에세이집과 시집을 발표하였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 발표한 《물에서 나온 새》《오세암》(1984), 《생각하는 동화》(1991) 시리즈 7권 등은 모두 300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작가를 반석 위에 올려 놓았고, 또 방정환(方定煥)·윤석중(尹石重)·이원수(李元壽) 이후 침체된 한국의 아동문학을 부흥 발전시키는 데도 이바지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1998년 11월 간암이 발병한 뒤에도 창작 활동을 계속하다, 2001년 1월 9일 사망하였다. 주요 작품에는 동화 《돌 구름 솔 바람》《입 속에서 나온 동백꽃 세 송이》《눈동자 속으로 흐르는 강물》《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초승달과 밤배》《느낌표를 찾아서》 등이 있으며, 《지혜의 작은 방》 시리즈 3권, 《모래알 한가운데》《그대 뒷모습》 등의 에세이집과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1983), 한국잡지언론상(1984), 새싹문학상(1986), 한국불교아동문학상(1989), 동국문학상(1991), 세종아동문학상(1992), 소천아동문학상(2000) 등을 받았다.

한국 동화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그의 동화집 『물에서 나온 새』가 독일에서, 『오세암』은 프랑스에서 번역되어 1999년 발행되었으며, 『입 속에서 나온 동백꽃 세 송이』는 뉴욕대학교 동양어학과 한국어 교재로 채택되었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정채봉



하늘 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 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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