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길농원
 
 
 

 전체 272건, 1 / 14 pages
NAME   조상현
FILE #1    1_3_47023.jpg (230.1 KB)   Download : 226
FILE #2    1_3_47022.jpg (189.2 KB)   Download : 224
SUBJECT   사막의 섬, 환상의 우이도




장마가 끝나자 저마다 뒤질세라 해수욕장으로들 달려 나간다. 특히나 젊은이들에게는 바다,그 가운데서도 모래사장의 추억만으로도 달려간 수고가 아깝지 않다. 그런데 그들의 추억만들기가 신명날수록 모래가 이룬 밭 백사장은 절체절명의 위기로 빠져든다. 강변의 모래를 퍼내다가 바닥이 드러나자 돈 좀 벌겠다고 팔 걷어붙인 업자들,바닷모래에 손을 댄지 오래다. 금모래 은모래 끝없던 강변의 모래밭이 사라지자 이내 바다로 눈길을 돌린 것.그러나 바다모래는 무한정이라고 믿었던 그들은 마침내 어민의 저항에 맞닥뜨렸다. 알고 보면,바다 모래밭은 물고기들의 산란장이다. 바닷모래를 파내 지은 아파트에 아늑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그 뒷전에서는 보금자리를 잃은 물고기들이 뿔뿔이 연안을 떠나는 역설의 변증이 드러난다. 그래서 그 모래의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모래가 지천인 ‘바다 위의 사막’으로 발길을 돌린다. 사실,막막하고 황량한 땅은 바로 사막이다. 그러나 사막의 척박함을 모르고 사는 우리에게 사막은 그 자체가 ‘낭만’으로 다가온다. 방울소리 쩔렁이는 쌍봉낙타를 타고 끝없는 사막을 가로지르다 오아시스를 만나는 꿈을 꾸며 살아온 덕분에 하다 못해 유행가 가락에도 사막예찬은 곧잘 묻어난다. 만약에 그런 사막이 바다 가운데 있다면? 그야말로 환상적이지 않을까.전남 신안군 우이도가 그런 곳이다.

●목포에서 뱃길로 100리길 사막 너머로 바다가 굽어 보인다.
섬 속에 사막이 있다는 단 한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막은 사구(砂丘)의 과장된 표현.아무렴 어떨까.바다가 굽어보이는 사구까지도 사막에 대한 향수로 노래하려는 나그네의 객기인 것을.
목포항에서 바로 가는 배편도 있지만 도초섬에서 배를 갈아탔다. 바다의 시간은 육지의 그것과 달라 그저 ‘기다림’이 일상화되어 있다. 기다려야 한다. 성급할 것 없으며,서두른다고 해결될 일도 별로 없다. ‘바다가 육지라면’이란 노래가 절로 나온다.
바다의 시간은 느긋하지만 도회의 이방인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지척에 드러누운 섬도 배가 없으면 범접을 못한다. 하물며 머나먼 외해는 그야말로 언제나 전인미답(前人未踏)이요,고도절해(孤島絶海) 아니겠는가.
목포에서 43㎞, 뱃길로 100리길이니 흑산도 항로의 절반이다. 바깥바다답게 바람과 파도가 드세어 여름 한철을 빼고는 허구한 날 뱃길이 끊기는 곳이다. 반대로 생각하면,사람들의 발길이 그렇게나마 끊겼기에 망정이지 그런 불편조차 없는 곳이었다면 사구가 온전히 남았겠는가. 여객선이 방파제로 접어들자 중앙의 거대한 사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모래언덕’이라기보다는 ‘모래산’이다.
각종 연구보고서에는 이를 풍성사구(風成砂丘)라고 적고 있다. 바람이 빚은 사구란 뜻일 텐데,참 어렵고 멋없는 말이다. 세상에 바람이 빚지 않은 사구가 어디 있으랴.우이도 사람들은 이를 ‘산태’라고 부르거니와 토착어를 살린다는 뜻에서 부디 이 ‘산태’라는 구전전승어를 기억할 일이다. 산사태 같은 모래산이란 뜻일 터이니,짚어보면 참 아름다운 말이다. 부디 풍성이란 우스운 말을 빼고 본디말인 ‘산태’로 쓰거나 그게 어려우면 그냥 ‘사구’로 가려 씀이 마땅할 것이다.

●모래언덕 위에 마을 들어서
방파제에서 불과 5분여 거리에 돈목마을이 있다. 돈목 방파제에서 보면 건너편에 빤히 성촌이 보이고,돛폭을 펴 바람을 맞듯 돛대바위가 물목을 지키고 서있다. 만의 양측 산은 늘 안개에 젖어 있다. 그래선지 산길에는 고사리가 지천이다.
돈목은 산의 모퉁이에 터를 일궈 바람의지가 되는 마을이다. 이곳에서 30여m를 걸어나가면 돈목해수욕장이라 불리는 해변에 이른다. 건너편은 성촌마을이다. 말하자면,돈목과 성촌 사이가 온통 사구인 셈.그 중 가장 큰 중앙사구를 보면 산자락 사이의 계곡을 모래가 온통 꽉꽉 채우고 있다. 다시 둘러보니 돈목,성촌이 모두 모래언덕 위에 형성된 마을 아닌가.산과 산 사이 협곡을 꽉꽉 채운 높다란 사구로는 이곳이 한반도에서 유일하며,외국에서도 그 예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전형적인 연안사구와 해빈(海濱)의 지형을 갖춘 우이도,참으로 소중한 연안생태환경이다.

●북풍에 깎이고 남풍에 쌓이고
일부러 둘러보니 해변은 물론 뭍밑도 온통 모래밭이다. 바다 속의 모래가 파도에 밀리고,바람에 날려서 해변에 거대한 모래의 성채를 쌓은 것이다.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을까.이 정도의 사구를 형성하기까지 상상을 절하는 시간이 사구에 잠겨있을 것이다. 겨울에는 성촌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겨울의 북풍은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매섭고 강하다. 산 정상의 모래가 깎여서 표토의 돌들이 드러날 정도다. 여름이 오면 남풍이 분다. 다시금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하여 모래가 쌓인다. 모래가 다시 산 정상을 덮는다. 그런 퇴적의 상호 교체과정이 오랜 세월 반복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바람이 빚은 예술이다. 바람은 거침없이 분다. 김수영은 그의 시 ‘풀잎’에서,바람이 오면 풀이 바람보다 미리 눕고,바람보다 늦게 일어난다고 했다. 그러나 풀과 달리 모래는 바람에 저항한다. 바람에 맞서다 끝내는 멀리 날려간다. 바람의 힘에 밀린 모래들은 언덕을 만들고,끝내는 모래산으로 오른다.
바람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는 다른 예에서도 알 수 있다. 영국 남쪽의 해스팅스(Hastings)마을을 보자.1066년 노르만족이 침입할 당시만 해도 바닷가에 위치했지만,지금은 해안에서 수㎞나 떨어져 있다. 거센 겨울 폭풍이 엄청난 양의 모래를 몰고와 퇴적된 결과이다. 이렇듯 우이도 사구도 거대한 바람만이 이룰 수 있는 걸작이다.
우이도 사구에서 굽어보면,파도에 으깨지는 모래와 사구의 모래가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똑같은 모래인데도 ‘파도의 지문’과 ‘바람의 지문’이 다르기 때문이다. 바람의 지문은 파도의 지문처럼 파문(波紋)이 강하지 않다. 끊임없이 움직이며,매우 섬세하고 미세하게 흔들려서 끝내 ‘비단길’ 같은 예술품을 빚어낸다. 실크로드가 비단이 오간 데서 비롯되었다고는 하지만,아름다운 모랫길의 비단 같은 질감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런 점에서 우이도 사구는 한반도에서 매우 드물게 비단길의 품격을 보여주는 곳이다.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이 찾아드는 것은 전적으로 사구 때문이다. 사람들은 수영복만 걸친 채 사구를 걸어 올라간다. 한여름에는 사구 정상이 사람들로 빼곡하다. 눈썰매 타듯 사구를 미끄러져 내려온다. 도시민들의 추억만들기란 고작 눈썰매장의 솜씨를 못벗어나나 보다. 그것도 모자라 모 신문사는 아예 ‘해풍 가르는 모래썰매’란,혐오스럽도록 반생태적인 기사를 싣기도 했다.

●생태공원화•해양연구 늦었지만 다행
지금 ‘바람의 예술품’은 몰락하는 기초예술처럼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늦게서야 사구의 중요성에 눈을 뜨고 학문적 대상으로 삼아 본격적인 연구를 하고,사구생태공원으로 삼기 위한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가령 신안군에서 전남대 해양연구소에 의뢰한 우이도 사구연구 따위가 그런 노력의 단면이다.
외국의 경우,당연히 사구는 절대 보호지역이다. 태안의 신두리 사구가 늦게나마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일은 만시지탄이다. 이웃 일본의 도토리(鳥取)도 사구생태관광지가 널리 알려졌다. 미국 미시간호 호변의 호프 마스터 주립공원 내의 질레트(Gillete) 사구,콜로라도 남쪽 크리스토 산기슭의 사구도 절대 보호대상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레톤(Moreton)섬 사구는 높이가 무려 250m에 이른다. 또 남아프리카의 알고아(Algoa)만(灣)에 있는 알렉산드리아 모래언덕은 120㎢ 넓이를 자랑한다. 해양생태환경의 위대한 유산들이다.
세계 곳곳에서 모래가 사라지고 있다. 분별없는 모래채취 때문이다. 바다모래의 총량은 절대 불변이다. 어디선가 모래를 빼쓰면 그만큼 다른 곳의 모래가 줄어든다. 해변의 각종 공사와 모래채취는 물길을 바꿔 해수욕장의 모래를 휩쓸어 낸다. 천혜의 백사장이 근래 앙상한 몰골을 드러낸 사례는 한두곳이 아니다. 이렇듯 우이도의 모래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모래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관광객들이야 신나겠지만 아무리 막강한 바람의 힘으로도 그 생채기를 복원해 내지는 못한다. 바람의 힘을 압도하는 인간의 발길이 산태를 들판으로 만들 요량이다. 바람에 맞서는 모래처럼 보다 강인한 방책은 없을까.그 흔한 산책로 하나 만들어줄 수는 없는 것일까.바다가 굽어보이는 모래산 정상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정약전 ( 1758 ∼ 1816)  선생이 떠오른다.
일찍이 이곳에서 오랜 귀양살이를 하다가 우이도 바깥 바다인 흑산도로 쫓겨가 현산어보(玆山魚譜)란 희대의 수산서를 남기고 떠난 약전. 당신께서도 우이도의 사구를 일상적으로 거닐었음이 틀림없다. 이곳을 하릴없이 오가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PREV    집앞 전경, 금성산
조상현
  2007/07/18 
 NEXT    의자 - 이정록
조상현
  2023/05/29 

  


Copyright 1999-2023 Zeroboard / skin by 嚴周浩